독서

[독서]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김히망 2025. 4. 20. 18:07

 
싯다르타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 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다.” _헤르만 헤세 번거로운 제례와 스승의 가르침에 한계를 느낀 싯다르타는 같은 뜻을 가진 친구 고빈다와 함께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숲속의 사문들 곁에서 고행하며 자아의 초극을 체험하려 한다. 그러나 사문의 고행도 이미 크게 성장한 두 사람의 정신세계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후 고타마 붓다를 만나 설법을 듣고, 고빈다는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문예출판사
출판일
2025.04.15

독일에서 시작해서 한국와서 끝낸 책이다. 

싯다르타 읽기 전에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독서록 썼어야 하는데 책 읽는게 너무 재밌어서 독서록 쓰기를 엄청 미뤘었다.ㅠ..

처음에는 내가 읽은 책을 기록하는게 의미 있을 것 같아서 독서록을 시작했지만.. 역시 읽는게 더 재밌고 쉬우니까 점점 숙제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하나하나 독서록 쓴 기록이 쌓이는걸 보면 참 뿌듯하다.

싯다르타는 다 읽고 새로운 책 시작하기 전에 독서록을 꼭 쓰려고 했는데, 그래서 지금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못 읽고있다. ㅋㅋㅋ 얼른 쓰고 다음 책 읽어야지..

 

싯다르타는 다른 이름으로 석가모니이다. 첨에는 헤르만 헤세.. 서양 소설에서 동양 사상에 대해서 다뤘다는게 생소하게 느껴져서 손이 갔다. 읽으면서 동양 사상에 빠삭한 헤르만 헤세가 신기했고, 다 읽고 나서 '작가와 작품 세계'에서 아버지는 선교사, 어머니는 동인도 태생의 동양학자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동양 사상에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헤세가 현대 작가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가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헤세가 추구한 것은 아름다움과 정신세계, 그리고 모든 가치를 전적으로 자기 내면의 명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어쩐지, 책을 읽으면서 명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품 내에서 싯다르타가 옴- 할 때마다 나도 옴- 하게 되었고, 자기 전에 내가 싯다르타라면 ..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독서록 쓰다가 .. 아이패드 액정이 깨져서.... 노트북으로 갈아탔다.. 아이패드로 밀리의 서재 띄워놓고 쓰는게 젤 편한데 .. 너무 불편 .. .....ㅠ

 

이 모든 것이 묶여서, 모든 소리, 모든 목표, 모든 갈망, 모든 번뇌, 모든 쾌락, 모든 선과 모든 악,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세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생성의 강이요, 삶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주의를 모아 이 강의 몇천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였을 때에, 그에게 번뇌도 웃음도 이미 구별하여 들리지 않았을 때에, 그가 자신의 영혼을 어느 한 소리에 묶어 자아를 그 음성 속에 몰입시키지 않고 모든 소리를, 전체를, 단일의 것을 들었을 때에, 비로소 몇천 소리의 위대한 노래가 단 한마디의 말로 이루어졌다. 그 말은 완성의 뜻 "옴"이었다.

싯다르타가 옴을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였다. 이전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 강의 소리는 과연 어떻게 들렸을까? 진짜 옴을 깨닳은 싯다르타에게 그 강은 예전의 그 강이 아니었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 싯다르타가 부러웠다. 이 파트 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싯다르타가 부럽긴 했는데, 특히 이때 부러웠다. 진짜 옴을 깨닿고 다시는 옴을 깨닿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혜를 가지게 된게 ..

 

당신은 부드러움이 견고함보다 강하다는 것을, 물이 바위보다 강하고 사랑이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바수데바가 아들에게 메달리던 싯다르타에게 한 말이다. 이 책에서 진정한 현자로 자세히 묘사되는 사람은 바수데바였는데, 방황하다가 이제 막 자리 잡는 싯다르타에게 도움을 주고, 갑자기 아들이 생겨 힘들어하던 싯다르타에게 조언을 주는 장면이 참 좋았다.그래서 그런지 표시해둔 대부분의 하이라이트가 바수데바가 나오는 장면이다.

위 대사는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그의 아들을 향한 사랑이 어쩌면 사랑의 끈으로 그 애를 속박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시하는 파트이다. 자비와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진정으로 상대는 강요받지 않고 벌받지 않는 것일까? 쓰고나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왜인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나 스스로도 반성할 것들이 생각났다. 

내가 꼭 직접적으로 화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고해서, 진짜 그 대상에게 화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꾹 참고 상대를 이해하고 바꾸려 노력하는 행동 자체도 일종의 강요일 수 있다는 것이다. 꼭 타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그럴수도 있다.

 

한 인간 때문에 괴로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며, 한 인간으로 인해 절망하고, 하나의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어버렸다. 이제 뒤늦게 그도 일생에 한 번 가장 강렬하고 야릇한 열정을 느꼈고, 그 열정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겪었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했다. 무엇인가 새로워지고 무엇인가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싯다르타가 아들로 인해 겪은 감정들이다. 싯다르타는 카마라를 사랑했지만, 아들로 인해 사랑을 진정으로 배웠다. 부성애의 괴로운 번뇌를 겪으면서 싯다르타는 역으로, 자신이 떠나온 자신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짐작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사랑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배우면서 결국 완성자가 되어갈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을 읽을 때마다 부모의 마음이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사랑의 깊이, 그 이상일 것이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세상에 영원을 없을 수 있지만, 부모의 사랑은 어쩌면 영원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내가 좋아하는 매니저님 말씀이 잊히지 않는 것처럼..

 

내게 모든 것은 선이며, 그것은 나를 고무시켜주되 나를 해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네. 나는 나의 육체와 영혼으로 이런 체험을 했다네. 즉 나는 죄악을 절실히 필요로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쾌락과 물질적인 탐욕, 허영을 필요로 했고, 가장 타기할 자포자기까지도 필요로 했네. 반항하기를 포기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세계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현실의 세계를 내가 희망하고 내가 상상해낸 어떤 세계, 나에 의해 고안된 완전한 유의 세계와 동렬에 놓지 않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며 기꺼이 그 세계에 속하기 위하여 말일세.
...
내가 보기에는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세계를 동찰하고, 세계를 해명하며, 세계를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일일  것일세. 내게 유일한 관심사는 세계를 사랑하는 것, 세계를 경멸하지 않는 것, 세계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세계와 나,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과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네.
...
(그의 눈빛과 손, 그의 피부와 머리털, 그의 전체가 순수함의 빛을 발한다. 평안과 즐거움과 자비로움, 성스러움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

고빈다가 싯다르타에게 그가 깨달은 것들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이때 싯다르타의 말이 헤세가 하고싶었던 말이 아닐까? 세상을 바라보는 싯다르타의 시선을 닮아가야겠다 생각했지만 매순간 쉽지않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 모든 존재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노력해보겠다. 최근에 세상이 자주 미워졌는데 그럴때마다 싯다르타의 마음가짐으로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매순간 어렵지만, 적어도 감정이 더 격해지는 것은 피할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괄호 안의 내용은 고빈다가 그의 사상을 듣고 했던 생각이다. 고빈다는 그가 따르던 지존의 가르침과 달라서 그의 사상이 기이하고 어리석게 들린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모습은 꼭 그가 따르던 지존과 같다고 했다. 

완성자에 이르는 방법이나 사상을 다를지라도 결국 그 끝은 평안, 즐거움, 자비로움, 성스러움으로 수렴한다는걸까?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것은 옴, 세계를 사랑하는 것, 모든 존재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힘들 때마다 싯다르타를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