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롤란트 슐츠
- 출판
- 스노우폭스북스
- 출판일
- 2019.09.16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비로소 죽음에 대한 인간의 예의를 만나다
이 책은 인간의 죽음과 그 전후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고있는 책이다. 죽음이란 무엇일지, 누구나 경험하는 '죽음'에 대한 정보가 부족을 지적하면서 원하는 형태의 죽음(또는 그 과정)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죽은 후 장례의 형태, 분위기, 세세하게는 관에서 입을 옷 등이 있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위해 여러 업종 종사자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모든 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이야.'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하다. 죽은 자가 미리 정해두고 간 내용이 없다면, 그리고 그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모든 결정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결정을 빠르게 요구받고 빠르게 상황이 진행되는 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원하는 장례 형태를 미리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치만 내가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미리 내 장례 형태를 결정해서 계획해두는게 나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자 추억이 아닐까? 내가 뭘 좋아했는지,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장소, 음식, 분위기를 골랐을지 생각하면서 내 웃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물론, 내가 언제,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맞이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렇게 하고싶다.
책에서 죽음 이후의 과정 중 장례식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서류 처리 과정도 다룬다. 사망을 공식적으로 인증하기 위해 주검을 검안하거나, 검안 과정에서 사망의 원인을 정의하는 방식, 사망증명서 발급에 대한 내용도 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사망한 사람을 '당신'으로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상황 묘사를 한다.
그 관에는 그들이 사랑하는 한 인간이 누워있습니다.
...
긴장은 작별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로 바뀝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비슷합니다. 감정이 일치되는 순간입니다. 울고, 소리지르고, 화를 내고, 훌쩍거리고, 웃고, 웁니다. 이렇게나 고통은 큽니다. 이렇게나 사랑이 넘칩니다. 그들은 이제 다 함께 관을 덮습니다.
당신의 시신은 당신의 죽음을 현실세계에 뿌리내리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추모자들 중에 어떤 이들에게는 이미 죽은 당신이 자신 옆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옆에서 모든 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받기도 합니다.
...
약간의 명랑함이 비칠 만하면 곧 음울함이 오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된 데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이런 감정들이 더 강화되기도 하죠.
...
매장에 대한 세부사항은 다 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을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신경쓰였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내가 죽은 후, 내 세상의 모습. 내 관 앞에서 감정을 추스르는 사람들, 내 관을 덮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어쩌면 이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내 모습일수도 있다. 역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든다.
죽음 가운데 삶을 기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무엇을 위해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한 방향으로 곧장 나아가기만 했던 인생의 길,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겼던 사랑하는 이들,
크고 작은 행운들, 그의 삶들.
어떨 때는 문장 하나로 족합니다.
어떨 때는 복잡하게 얽힌 추억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그러고 나면 환하고 명료하게 당신이 어떤 인간이었는지가 밝혀집니다.
당신이 얼마나, 왜 중요한 존재였는지가 드러납니다.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인간이었는지, 내가 그에게 얼마나, 왜 중요한 존재였는지. 변변찮은 근거라도 좋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한 톨이라도 중요한 존재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자면 나를 밝고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기억 속에서 내 나쁜 모습은 사라지길. 그리고 내가 그리울 때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억 하나씩만 가지고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장 사라진다는건 절대 아니지만, 언제 사라지더라도 날 이렇게 기억할 수 있도록 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책의 순서 상 죽음 이전에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파트를 한 번 더 읽어보았다.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면 다른 이들이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용기 있게 살걸 그랬다고 후회합니다. 아니면 일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합니다.
...
걱정은 좀 덜하고,
하지만 실수는 더 하고 살아도 좋았을 것을.
...
사람들을 더 많이 안아 줄 걸.
마음속 감정을 좀 더 드러내 보일 걸.
언제나 그들 편을 더 들어줄 걸.
살면서 좀 더 행복해했어도 되었는데 ...... 하고 말이죠.
...
그러면 억눌렀던 갈등들, 깨져 버린 인간관계들, 놓쳐 버린 기회들, 지키지 않은 약속들, 낭비한 세월이 때론 더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읽는데.. 후회없는 죽음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한 내 마음에 한 줌 아쉬움, 찝찝함,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후회는 하더라도, 하지 못한 것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지금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곤란하다는 관계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주하지 싫다는 핑계 등으로 모른 척하지 말자.
지금 적으면서도 몇 가지 내가 모른 척 하고 있는 주제들이 스쳐지나간다. 언젠가는 이 주제들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책 마무리 페이지로 넘어와서, 작가는 나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날의 추모식은 어떤 방식이면 좋을까요?
당신이 즐겁게 웃던 어느 날의 영상이 있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당신이 즐겨 듣던 노래가 흐르면 좋을까요?
남겨진 이들 중에 누가 제일 걱정되나요?
그렇다면 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아야 할까요?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그들은 당신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나요?
아니면 느끼고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까요?
어떤 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될까요?
내 삶이 온전히 내 방식이었기 때문에, 죽음 또한 내 방식대로 이루어져야한다. 위 질문들은 내 삶의 방식과 동일한 선상에서 내 방식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다. 당장은 쉽게 답변이 나오지 않지만, 흘러가는대로 살다보면 순간순간 답변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록과 함께 유서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장 내가 죽는다면, 남기고 싶은 말을 생각해보다가, 생각보다 남기고 싶은 말이 없어서 놀랐다. 내 행복한 모습만 기억해주길, 너무 크게 슬퍼하지 않았으면, 가끔가다 내 생각이 나면 방긋 웃어달라고, 이런 말들이 하고싶었다. 이외에는 남기고 싶은 말이 없길래.. 따로 쓰진 않아야겠다! 나중에 하고싶은 말 생기면 써봐야지.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 내 집 마련 관련 도서들, 그리고 대출 전략과 특약사항 정리 (5) | 2025.05.10 |
---|---|
[독서] 흰 - 한강 (1) | 2025.05.04 |
[독서]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0) | 2025.04.20 |
[독서]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케이틀린 오코넬 (1) | 2025.04.14 |
[독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 | 2025.04.02 |